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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재난지역에서 모텔값을 네배를 받는다면?

 

매우 유명한 책인 만큼 많은 분들이 이미 이 책을 읽어보셨거나

제목을 들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좋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방면에서 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더 많은 행복을 살 수 있을까?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활동과 관계에 달려 있을까?

불평등이 심화되고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확대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유한 부모가 그렇지 못한 부모에 비해 자녀 사교육에 더 많은 돈을 지출할 수 있는 상황은 정당할까?

기업은 다른 것에 우선해 주주 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해야 할까?

아니면 종업원, 고객, 협력업체, 기업이 속한 공동체의 복지 증진에도 힘써야 할까?

정부는 소비자들에게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대형 업체들로부터 지역 상권을 보호하는 노력을 해야 할까?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와 행동에 남한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세월호의 비극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은 극심한 이견과 격렬한 논쟁을 촉발하지만

두려움 때문에 공적인 장으로 가져오길 주저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다양한 측면의 주장과

그 주장의 바탕이 되는 생각을 설명합니다.

 

 

 

 

 

허리케인 찰리가 휩쓸고 간 플로리다

 

 

 

2004년, 멕시코 만을 강타한 허리케인 찰리는 22명의 인명 피해와 11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발생시킵니다.

이후 사람들 사이에는 난데없는 가격 폭리 논란이 벌어집니다.

어느 주유소는 2달러짜리 얼음을 10달러에 팔고

8월 한여름에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냉장고나 에어컨을 틀 수 없게 된 많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평소보다 5배의 가격에 얼음을 샀다고 합니다.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느라 전기톱을 사거나 지붕을 수리하려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는데

주택 수리업자들은 지붕을 덮친 나무 두 그루를 치우는 데 무려 2만 3천 달러를 요구했다고 하죠.

250달러 하던 발전기를 2천 달러에 팔았으며

79살의 할머니는 나이 많으신 남편분과 몸이 불편한 딸을 데리고 허리케인을 피해 모텔에 묵으려고 했으나

평소에는 하루에 40달러 하던 방을 이제는 160달러씩 쳐서 숙박비를 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어렵고 불행한 처지를 이용해 한몫 챙기려는 행동에 분노했습니다.

플로리다에는 가격폭리를 금지하는 법이 있었기에

2천 건이 넘는 신고가 접수되었고 이 중 일부는 승소 판결을 받았죠.

 

 

 

 

 

토머스 소웰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당 법과 대중의 분노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장 사회에서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될 뿐 '공정 가격'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유 시장 경제를 지지하는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가격 폭리란 표현은

"감정적으로는 중요하겠지만 경제학적으로는 무의미한 표현이라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혼란스럽다는 이유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라고 말했죠.

사람들에게 익숙한 가격 수준이라고 해서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볼 수는 없으며

모텔 값, 생수, 지붕 수리 등의 상승은 수요자의 소비를 억제하고 먼 곳의 공급자들로 하여금

하리케인으로 인해 수요가 늘어난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동기를 강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가격 폭리 방지법을 지지하는 주장에서는

비상 상황에서 압력을 받는 구매자들에게, 안전한 숙소와 같은 생필품의 구매가 강제되고 있으며

이는 자유 시장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하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득을 얻으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다른 사람의 불행한 처지를 이용하는

탐욕에 대해서는 벌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막상 법을 통해 미덕과 악덕을 심판하려고 할 때에는 우려를 나타내는 이중성을 보이죠.

정부와 법이 무엇이 악덕이며, 무엇이 미덕인지를 판단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죠.

 

 

 

 

 

이런 딜레마는 정치 철학의 중요한 문제 하나를 드러냅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시민에게 미덕을 장려해야 할까, 아니면 법이 미덕을 둘러싼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면서 시민들 스스로 최선의 삶을 선택하도록 해야 할까?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

 

고대 정치사상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판단하려면, 어떤 미덕에 명예와 포상이 주어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고

법이란 좋은 삶을 묻는 질문에 중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했죠.

 

 

 

 

 

 

 

반대로 근대 정치 철학자들은(칸트에서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권리를 규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무엇이 미덕이며 최선의 삶의 방식인가에 대한 주관적 견해에 좌우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신 정의로운 사회라면 개인이 각자 좋아하는 좋은 삶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죠.

 

 

 

 

 

이처럼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정치를 움직이는 정의에 대한 주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겉으로는 경제적 풍요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지만

이면에는 명예와 포상을 누릴 미덕이 무엇이며 좋은 사회가 장려해야 할 생활 방식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자 하는

일련의 다른 신념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풍요와 자유를 굳건히 지지하면서도,

정의에 있어서 판단의 요소를 개입시키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있는 것이죠

정의에 대한 고민은 불가피하게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역시 포함시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저자는 이야기합니다.